2016년 9월 7일 수요일


 



호프먼의 진화론적 인식론
 
불교의 일부 학파에서는 시각, 촉각. 후각 등 인간의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에 의지해 세상을 살아간다. 그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이니까.
 
그런데 여기에 인간의 인식을 깊이 연구한 학자가, 우리의 현실을 의심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현대의 정교한 학문적 탐구 방법을 통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이름은 호프먼(Donald Hoffman)이다.
그가 TED 강연에서 한 말을 간추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의 질문은 우리가 보는 현실은 현실의 진상(眞相) 그대로인가?”이다. 그는 내 눈 앞에 보이는 토마토나 사과 등이 정말 외계인이 보아도 그대로 토마토나 사과로 보일 것인지 묻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은 자주 착오를 일으켰고, 시각 역시 착시 현상으로 현실을 왜곡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평한 땅을 보고, 한때 지구는 사각형의 평면이라고 믿었다. 원근법에 따라 그린 그림을 보고, 그것을 삼차원의 물건으로 착시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지면 애인이 세상에서 제일 미인처럼 보이는 심각한 인식의 착시 현상에 빠진다. 속담에 곰보도 보조개라는 말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있는 곰보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감각을 완전히 신뢰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갈릴레오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 향기, 색깔 등은 의식 안에 있다. 따라서 만일 생물들이 사라진다면, 이 모든 감각들은 제거될 것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인간의 감각은 현실과는 또 다른 해석일 뿐인가?
 
뇌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뇌의 대뇌피질의 1/3이 시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눈을 뜨고 사물을 바라보면, 수십억의 뉴런과 수 조개의 시냅스가 거기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눈에는 카메라와 같은 기능이 있어서, 안구 뒤에는 13천만 개의 광수용체(photoreceptors)가 있으므로, 130 메가픽셀의 사진기와 같다. 하지만 그렇다면 수 십억의 뉴런과 수 조개의 시냅스는 무엇이란 말인가?
 
뇌신경학자들은 그것들이 리얼타임으로 우리가 보는 모든 형태와 색깔과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보고 있는 사물들을 구성해내는(construct)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체를 한꺼번에 구성하지 않고, 순간에 필요한 것만을 구성한다.
 
그런데 뇌신경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현실을 재구성한다고(reconstruct) 말한다. 따라서 내가 보고 있는 토마토는 실제 토마토의 성분들을(properties) 재구성해서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뇌신경학자들의 주장은 진화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즉 진화 과정에서 사물을 더 정확하게 바라본 조상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열등한 조상들을 도태시켰을 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수한 조상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생각은 정확한 인식이 진화론적으로 더 적합하며, 생존에 유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화론을 제대로 해석한 것일까? 우리는 먼저 자연에서 몇 가지 예를 살펴보아야 한다.
 
호주 보석 딱정벌레(Australian jewel beetle)는 표면이 갈색으로 빛나는 곤충이다. 이 벌레는 비행을 하다가 앉아 있는 암컷을 발견하면 교미를 시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들이 맥주병을 버리기 시작한 이후로, 이 벌레들이 병 위에 올라타고 교미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맥주병은 갈색이고 빛이 나며 (좀 크기는 하지만) 딱정벌레처럼 튀어나왔다. 하지만 수컷은 이를 암컷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심각해져서 수컷이 맥주병에만 매달려 교미가 되지 않아 멸종 위기에 이르자, 호주 정부가 맥주병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수컷들은 수 백만 년 동안 암컷을 찾아서 교미를 해왔다. 그들은 볼록 나오고, 빛이 나며 갈색인 것은 암컷으로 인식했고, 클수록 더 좋다고 여겼다. 즉 진화론에 따른 인식이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준다는 주장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선택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지에 관한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 이에 호프먼은 컴퓨터를 이용해, 인공적인 세계에서 다양한 유기체들을 경쟁하게 해서, 어떤 유기체가 생존하고 번성하는지, 어떤 감각 시스템이 진화론적으로 더욱 적합(fit)한지 실험해 보았다.
 
진화의 방정식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적합성, 또는 적응성(fitness)이었다.
고기 한덩어리가 있을 때, 배고픈 사자에게는 그것이 적응을 높여주는 사물이다. 하지만 교미를 원하는 사자에게는 적응성을 높여주지 않는다. 토끼에게도 고기 덩어리는 적응과 관련이 없다.
적응성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 뿐만 아니라, 유기체와 그들의 상태, 행동 등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응성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지만, 진화의 방정식에서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호프먼은 무작위로 추출한 다양한 세계와 생물들을 세상의 자원을 놓고 경쟁하도록 했고, 이런 진화적 게임 시뮬레이션을 수천 번에 걸쳐 행했다. 어떤 생물은 현실을 모두 보았고, 어떤 것은 단지 일부만 보았고, 어떤 것은 현실을 보지 못했지만 단지 적응성만을 보았다. 어떤 생물이 승리했을까?
 
놀랍게도 현실을 그대로 지각(知覺)한 생물은 멸종했다. 거의 모든 시뮬레이션에서 단지 적응성만 발달한 생물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다른 모든 생물을 멸종시켰다. 그래서 결론은, 진화는 정확한 지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을 지각하는 생물은 멸종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정확하기 바라보지 않는 것이 왜 우리에게 생존의 이점을 주는 것일까?
 
그런데 호주 보석 딱정벌레에서 보듯이, 그들은 아주 단순한 방법과 방식으로 수천, 수백만 년을 생존해왔다. 그리고 진화의 방정식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가 그 딱정벌레와 같은 방식으로 생존해왔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유지해주는 방법과 방식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유용한 것일까? 컴퓨터에 있는 데스크탑 인터페이스(desktop interface)로 설명할 수 있다. TED Talk의 푸른색 아이콘icon은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있다.
 
하지만 텍스트 파일이 푸른 색이고, 사각형이며, 컴퓨터 오른쪽 아래에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컴퓨터의 현실을 가르켜 주기 위해 거기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을 숨기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다. 푸른 아이콘의 내부에는 다이오드와 레지스터, 그리고 메가바이트의 소프트웨어가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면 텍스트 파일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편집하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진화는 우리에게 현실을 숨기고, 적응 행동을 인도해주는 인터페이스를 준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지각하는 공간과 시간은 우리의 데스크탑이다. 그리고 사물들은 단지 그 데스크탑에 있는 아이콘일 뿐이다.
 
진화는 우리가 생존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지각의 상징들(perceptual symbols)로 인간을 형성해 왔다. 그래서 만일 뱀을 만난다면 그 실체는 뱀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위험한 물체라는 지각적 상징이다. 따라서 뱀을 만나면 함부로 만지지 말아야 한다. 또 절벽을 만나면 뛰어내리지 말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진화의 이론에 따르면, 현실은 3D 데스크탑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실제 세계의 복잡성을 숨기고, 우리의 적응 행동(adaptive behavior)을 인도해 주도록 고안된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은 우리의 데스크탑이고, 물리적 사물들은 단지 데스크탑 안에 있는 아이콘들일 뿐이다.
 
시공간과 사물은 현실의 본질(nature of reality)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붉은 토마토를 볼 때, 그 현실은 붉은 토마토가 아니고, 붉은 토마토와 유사하지도 않다. 사자나 고기덩어리도 현실에서는 사자나 고기덩어리가 아니다.
 
또 우리의 두뇌와 뉴런도 현실이 아니고 유사하지도 않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현실이 이 세상의 진정한 인과 관계의 진정한 원천이다. 두뇌나 뉴런은 인과력(causal power)이 없다. 그것들은 우리 지각 경험이나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 아니다. 두뇌와 뉴런은 인간에 특별한 일단의 상징들(species-specific set of symbols)들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의식 경험을 유발하는 거대한 모종의 기계일지도 모른다. 또는 현실은 의식 주체들의 상호작용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단순하고도 복잡하기도 한데, 서로의 의식 경험을 유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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