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김문수


탈북자는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입니다. 탈북자는 북한에 있든지, 탈북을 했든지, 대한민국 국적자입니다.

  외국인이 국적을 취득하는데는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는 헌법 제3조에 따라, 자동으로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공무원은 탈북자를 보면 무조건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중한국대사관에 가보면, 탈북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통일을 생각하는 법률가모임 이재원 변호사ㆍ박선영 물망초이사장이 탈북어부를 강제북송한 서훈 국정원장ㆍ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ㆍ김연철 통일부장관ㆍ정경두 국방부장관을 '살인방조ㆍ직무유기ㆍ직권남용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범으로 함께 고발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은 오직 김정은 기쁨조 노릇에 정신이 팔려, 자유를 찾아 사경을 넘어 온 젊은이를 죽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문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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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 선원 강제 북송에 의한 생명권 등
인권 침해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규명하라!
일시 : 2019. 11. 11.(월) 11:00
장소 : 국가인권위원회 앞
1. 지난 7일 대한민국으로의 귀순의사를 밝혔던 북한 선원 2명이 강제로 북한으로 추방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정부는 위 북한 선원 2명이 오징어잡이 배에서 동료선원 16명을 살해한 살인범이라고 밝혔으나, 이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고 살인 혐의에 대한 어떠한 객관적인 증거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만일 위 북한 선원들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면, 우리 법원에서 그 혐의 여부에 대한 재판을 통해 이를 밝혔어야 할 것이다.
2. 북한 주민 역시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헌법 제10조에 근거한 일반행동의 자유, 행복추구권과 생명권, 헌법 제14조의 거주이전의 자유 및 헌법 제27조 제4항의 무죄추정의 원칙이 보장된다. 또한 우리나라에 적용되는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은 고문 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의 추방 및 송환을 금지하고 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지도 아니한 북한 선원들에 대하여 살인범으로 확신함으로써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하였고, 북한의 독재정권을 떠나 자유민주주의를 찾아 내려온 북한 선원들을 강제로 북송시킴으로써 그들의 행복추구권, 일반행동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였고 더 나아가 헌법상 최고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였고, 위 협약을 위반하였다.
4. 이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 사건과 관계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정경두 국방부장관, 김연철 통일부장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공동경비구역(JSA) 임모 중령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며,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바이다.


2019. 11. 11.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상임대표 김태훈, 공동대표 석동현, 이헌, 채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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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살인자는 북한에서 잡힌 아재임.
- 남한이 강제북송한 2명은 영양실조 상태라 군대도 못간 초보 보조 뱃사공 (우리로 치면 알바 수준)
- 이들은 사람 죽인 적 없고 남한 귀순하기 위해 탈출한 거임.   /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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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미 대한민국을 침공했습니다


정규재 TV에서 밝힌 내용을 보니 국내에 존재하는 인권단체가 150여개군요.

인권단체들은 대부분 중국자본의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일환이구요.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오래 전에 국내의 지인에게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재편성이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중국정부의 심리공작이라고 언급했습니다만... 반응은 다들 아시죠?

"에이 요즘 그런게 어딨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빨갱이 타령이야?~~~"

사모펀드를 통해 매수된 정치인들, 공무원들, 언론인들....  검찰에서 조사해보면 수도 없이 나올겁니다.

베이징의 그레이트월 호텔 지하에 있던 천상여인에 가서 하룻밤 수천만원짜리 접대를 받았던 정치인들
이야기가 언젠가 나오겠지요.
대한민국이 북괴의 공작에 의해 넘어가기 이전에 이미 중국은 대한민국을 침공했습니다. /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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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민주주의 국가는,

정권이 잘하면 연장, 못하면 교체라는 대 원칙이 있는 건데

여당 대표가, 자기 죽을 때까지 정권 못 내준다,

이 발언만큼 더한 막말은 없습니다.


그럼 당연히, 2년뒤 정권 교체되면 너 죽어야지, 이런 반론이 나오게 되어있지요.


그런데 정작 이해찬이 아닌 김재원이 사과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황교안과 보수언론이 주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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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경제학의 근본을 뿌리째 뒤흔드는 새로운 세계관의 도발,
경제학은 혁명을 원한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도, 절대다수를 풍요롭게 만들지도 못하는 주류 경제학을 폐기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의 경제학을 요구한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네트워크 이론, 복잡계 과학, 행동경제학, 시스템생물학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경제학의 미래를 설파하고 있는 경제 교양서의 수작!

예측과학의 신예학자 데이비드 오렐이 밝히는
경제학의 10가지 도그마와 새로운 경제학의 미래


[거의 모든 것의 미래]의 저자이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복잡계에서의 예측모형에 관한 연구’로 응용수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시스템 생물학의 신예학자 데이비드 오렐은, 경제학자들이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를 "경제이론의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가정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마디로 "우리의 대학 커리큘럼에서부터 월가의 최첨단 분석기법까지 주류 경제학의 기본 가정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경제학 신화(ECONOMYTHS)’이며 부제는 ‘경제학이 범하고 있는 10가지 오류(Ten Ways That Economics Gets it Wrong)’이다. 원서의 부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데이비드 오렐은 주류 경제이론의 배후에 있는 오류가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고, 반대되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지를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짚어본 10가지 경제학의 오류란, "경제는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경제의 주체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들이라는 것, 경제적 위험은 통계를 이용해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경제는 안정적이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중립적이고, 공정하다는 것, 경제적 성장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항상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존 신고전파 경제학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그것이 뉴턴 역학에 입각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뉴턴표 경제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뉴턴 역학의 체계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균형을 정상 상태로 생각한다. 경제는 스스로 조절하며 마찰 없이 돌아가는 ‘자동제어장치’ 같아서 항상 균형 상태에 있으며, 외부 충격에 의해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상쇄하는 힘의 작용에 의해 다시 균형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내생적인 불안정성이나 급격한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다양성의 확대와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출현’,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변의 소용돌이’.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균형’이 아닌 변화를 ‘정상’ 상태로 하는 경제학이 필요하다. 현실의 경제는 불공정하고, 불안정하며, 지속 불가능한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데이비드 오렐은 주류 경제이론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생각들이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힐 뿐만 아니라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 대안이란 21세기의 지식과 기술의 바탕 위에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새로운 경제학을 발명해보자는 것이다. ‘시장은 언제나 옳다’라는 고지식한 소리가 새로운 목소리에 묻혀버리도록 말이다.

"경제학은 인간 행동의 수학적 모형이다"
과학으로 위장된 경제학의 오류들이 뿌리부터 파헤쳐진다


‘주류 경제학이 전적으로 오류’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의 위대한 힘이란 자기 교정이다. 뉴턴의 운동법칙마저도 양자역학에 의해 수정되었듯이 데이비드 오렐은 어떤 이론이 잘못되었다면 더 나은 것으로 교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제학을 재생시킬 새로운 접근법은 불확실성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네트워크 이론, 복잡계, 심리학, 그리고 시스템 생물학 등 경제학 주류 커리큘럼을 벗어난 새로운 학문 패러다임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경제나 생명체나 환경 같은 대상들은 그 내부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체계’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전체 체계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주류 경제학은 개인, 가계, 기업, 정부와 같은 행위자들이 서로 독립되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하면서 단순한 방정식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환원하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군중행동과 같은 서로의 상호작용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현상, 즉 창발적 현상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므로 ‘복잡계 과학’을 활용하여 경제를 ‘네트워크로 연결된 행위자들의 체계’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정책적인 함의도 갖는데, 데이비드 오렐은 한 변전소의 과부하가 전 지역의 전력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전력망을 서로 독립된 영역으로 만드는 것처럼, 경제도 도미노처럼 연달아 붕괴하지 않도록 장벽을 만들어 전체 체계의 안정성을 높이되, 이렇게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므로 피드백(되먹임)을 잘 설계하여 불안정성이 극대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경제는 자동적으로 균형과 평형을 찾는다’는 잘못된 가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안정성에 대한 그릇된 믿음은 경제의 ‘중용’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도 이어진다. 데이비드 오렐은 먼저 파스칼의 삼각형이라는 예를 통해 안정된 체계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정규분포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이는 대부분이 평균값 주변에 몰려 있고 그로부터 일탈하는 값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패턴을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소득이건 지적 성취건 성장이건 간에 바람직한 체계는 정규분포의 원리에 맞게 구성되거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저자는 다시 한 번 똑같은 파스칼의 삼각형을 통해 아주 작은 변화가 어떻게 극도로 불평등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낸다. 무작위적인 투자와 부의 상속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모형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20:80을 지나 극소수가 모든 부를 소유하고 대부분이 빈곤에 허덕이는 패턴이 만들어짐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현실적인 부의 분배와 일치하는 패턴이다. 현실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불평등한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왜 이런 패턴이 나타나는 것인지, 그 특징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경제학의 또 다른 잘못된 가정은 경제적 행위자들이 ‘합리적인 이성적 행위자’라는 것이다. 개개인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가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류 경제학의 중요한 토대인 ‘합리적 기대가설’은 말한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조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인 숙고가 아닌 직관적으로 형성된 빠른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결국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현실의 행위자를 배제한 가설은 현실과 점점 더 유리된 모형만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저자는 꼬집고 있다.
이밖에 데이비드 오렐은 경제학의 기본 가정뿐만 아니라 ‘이론의 전반적인 성격’까지도 잘못되었음을 짚어내고 있다. 객관적인 수학적 원리를 사랑하는 과학주의적 성향,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투자자를 선호하는 성향 등은 주류 경제학의 이론과 실천이 남성 중심적 사고와 관행에 크게 오염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며, 어쩌면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음’의 원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경제학의 심각한 불구를 치유하는 데 중요한 영감이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여성적인 원리를 내세운 몇 가지 운동들은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이것은 여성들의 경제적 활동과 지위가 상승 · 확대됨에 따라 더 중요한 조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주류 경제학은 과학혁명이 필요하다"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이제 잘못된 경제학의 결과들을 냉정하게 따져볼 차례다. 주류 경제학과 그에 바탕을 둔 정책과 체계는 풍요롭고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행복한 경제를 약속한 것과는 달리, 심하게 불공정하며 비합리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실질적인 행복을 하락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그 명백한 결과를 지적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복잡계 경제학이 필요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데이비드 오렐은 그 해결과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권력’과 ‘미래’를 분석에 포함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불공정에 대해 예민하지 못하고 성장은 영원하다고 주장하지만, 복잡계 경제학은 이 불균등한 힘의 차이와 지속가능한 경제를 모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이론이 무려 15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10년만 더 지속된다면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는 올바른 이야기였을 수 있고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던 그런 이야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주류 경제학은 이제 그 유용성이 한계에 달했다. 데이비드 오렐은 과학은 전통적으로 좀 더 합리적인 예측을 내놓는 이론이 기존의 이론을 대치함으로써 진화해왔다고 보고,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는 관념을 내다버리고 환경의 오염이나 행복지수, 생태계를 경제 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것과 같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경제학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을 대체할 그 혁명의 방향은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 혁명의 심장부에 ‘인간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제 우리들이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경제가 복잡하고 동적이며 네트워크화된 체계임을 일깨우면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를 요구할 수 있다. 우리는 경제가 불공정하고 불안정하며 지속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그것을 고칠 방법을 요구할 수 있다. 세계 경제는 성장했고 낡은 신화는 그 힘을 잃고 있다. 이 책의 해제를 쓴 우석훈 박사의 말처럼 이 책은 "비포 더 레인!" 대홍수가 오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제학의 혁명을 알리는 시발점에 있는 책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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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게시물에 중국어 낙서 /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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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en Paterson인증된 계정 
1시간 전
“Corbyn is closer to the Chavista autocrats than to European socialists. He sides wholeheartedly and unquestioningly with any Leftist regime, however oppressive...Never once has he argued that their contempt for democracy undermines their legitimacy”

영국 노동당 당수 제임스 코빈은 유럽의 사회주의자들보다는 차베스 류의 독재자에 가깝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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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isn't about understanding things (& people);
it is knowing what they can do to you."
- Nassim Nicholas Taleb

지혜는 사물이나 사람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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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of the people who spearheaded the Chinese Communist
movement, including Mao himself, were urbanized and educated
intellectuals in a country where most were illiterate.
The Revolution was one imposed by intellectuals upon peasants with guns forced into the hands of peasants.

중국 공산혁명은 지식인들에 의해 농민들에게 부과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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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n Singhal 
@clairlemon 님, @existentialcoms 님에게 보내는 답글
Well-off revolutionaries are rarely motivated by doing well
for poor whom they can hardly relate with, their primary
drive is hatred of those who are better-off than them.
This is why they are bothered about inequality as it affects
them and not poverty which affects the poor


부자 혁명가들은 별로 접촉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혁명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혁명으로 내몬 것은 그들보다 부자들에 대한 증오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에 관계되는 불평등은 싫어하지만,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난에는 무관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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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투성이의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역사
 
미제스는 프랙시올로지를 발전시켜서 경제학자들이 특정 사건을 설명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연역학으로 만들었다.
 
A Deeply Flawed History of the Austrian School
 
David Gordon
 
The Marginal Revolutionaries: How Austrian Economics Fought the War of Ideas
by Janek Wasserman
Yale University Press, 2019
xiii+ 354 pages
 
Janek Wasserman, who teaches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Alabama, has written a useful but deeply flawed book. Useful, because Wasserman has brought to light substantial archival material on the background of the Austrian school, but deeply flawed on two counts. First, Wasserman is beyond his depth when he writes about theoretical issues. In particular, he does not understand Mises, but his lack of knowledge is apparent elsewhere as well. Second, he obtrudes his political opinions on readers in a way that must generate skepticism about his presentation of his archival research.
 
Wasserman distinguishes a number of stages in the history of the Austrian school. I do not propose to discuss these in detail but will mention only a few highlights. In general, Wasserman stresses the networks among the leading Austrians. They all knew each other and, though often at odds, they tended to support one another in times of crisis. Further, the cultural ferment of Vienna affected them: “The exchange of ironical barbs and clever repartee reflected the mode of the Austrian School specifically and modernist Vienna in general. The famed literary critic and cultural icon Karl Kraus best embodied this spirit. Good polemics demanded satire and unfairness. It also was not enough to win one’s dispute with intellectual foes: one had to best adversaries in style. Schumpeter and Bőhm[-Bawerk] excelled in these arts and used the tools of the Gymnasium and coffeehouse to great effect.”
 
Schumpeter and Mises are often, and correctly, viewed as rivals who had little use for each other, but one of Wasserman’s most valuable insights is that they sometimes worked together. “Schumpeter encouraged Mises to speak out on Austrian monetary problems in the Austrian Political Society, where the two made common cause against the wartime government.”
 
Wasserman rightly notes that, despite his deviations from classic Austrian theory, Schumpeter’s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is best read as a defense of capitalism: “While capitalism in its current, desiccated form seemed destined for collapse, this need not transpire. Deploying a satirist’s wit and an ironist’s pen, Capitalism revealed that Schumpeter believed just the opposite. Capitalism may sow seeds of its own destruction, but it still constituted the surest guarantee of prosperity and democracy. Schumpeter also leveled a hearty criticism against his economist colleagues, whose static models of perfect competition and complete information, of partial and general equilibria, possessed little explanatory power for a dynamic world.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is one of the greatest and subtlest apologia for capitalism and elitist liberalism ever written.
 
If Wasserman deserves praise for his treatment of Schumpeter, unfortunately this same is not true for his account of Mises. He adopts uncritically the perspective of Hayek, who varied in his estimation of Mises, and Gottfried Haberler about Nationalőkonomie: “Hayek conceded that the book showed a glaring ignorance of recent developments. Hayek’s critique followed the lead of Haberler, who had argued for years that Mises was no longer a significant economist and that his work offered no insights for anyone who had learned economics since the Great War: ‘If one had studied the classics and Marshall in 1912, then one would have learned nothing from Mises.’” Had Wasserman consulted the book itself, he would have found that it includes references to Haberler’s then contemporary work on international trade theory and Hayek’s work, also then recent, on the business cycle and the socialist calculation argument. Matters become even clearer if one examines Human Action, the English expansion and revision of the German treatise. In it, Mises responds to Haberler’s criticism of Austrian business cycle theory and dissents from Hayek on the Ricardo effect.
 
Even more important, though, are Wasserman’s mistakes about praxeology. He says, “Mises’s most controversial assertion was his insistence on the a priori quality of the praxeological axiom. This unremitting stance, which denied explanatory power to inductive reasoning or empirical observations, left many scholars cold. Moreover, it did not seem that praxeology was supple enough to address contemporary problems.” Incredibly, Wasserman appears to attribute to Mises the odd view that every statement about economics can be deduced from the action axiom. Instead, of course, Mises developed praxeology as a deductive science that economists could use to help explain particular events. Doing so does not preclude empirical investigation but rather requires it.
 
An even worse misunderstanding is this: “Mises’s elevation of economics to the status of logic had great seductive power. If all of Mises’s economic assertions could be deduced from his core tenet ‘Human action is purposeful behavior’ then decisions that impeded the smooth functioning of human action violated scientific law and human will.” This does not follow at all, and only someone bereft of ability to reason logically could think it did. If all actions are purposeful, then actions that impede other actions are also purposeful.
 
Wasserman’s incompetence in theoretical issues is not confined to mistakes about Mises. He rightly says that The Theory of Games and Economic Behavior is difficult, but at one point he quotes a long sentence, which I shall not reproduce here, and says of it: “As a further example take one of von Neumann’s more straightforward explanations from early in the book, the elements of a game. [Then follows proposition 6.2.1] Virtually no economists at the time were familiar with set notation or group theory, rendering this passage incomprehensible to its intended audience.” In fact, the proposition is easy to understand and requires no knowledge of group theory or set notation. It says no more than that a game consists of a fixed number of moves, where a “move” is a choice among given alternatives, and provides symbols for these points.
 
Here is another example of Wasserman’s ignorance, though here I am captious. He says, “Rőpke attracted the support of Hayek and the Italian éminense grise social scientist Benedetto Croce”. To call Croce a “social scientist” is jarring. Croce was a leading light of Italian Idealist philosophy, as well as a historian and man of letters, not a social scientist.
 
Wasserman has strong political opinions and, as I have said earlier, he obtrudes these on readers in a way that arouses mistrust about his presentation of archival material. He says, “In this spat, the Austrians of the LvMI [Mises Institute] renewed their ongoing feud with the Kochs, GMU [George Mason University, and Cato]. The Misesians rejected the separation of economics and politics: Austrian economics implied libertarianism of a conservative stripe. The GMU Austrians were consistently anti-interventionist and pro-market not just in their scholarship but in their politics, and many of them identified ideologically with libertarianism. They nevertheless believed that one could keep one’s scholarship and politics separate. Rejecting the ‘value-free’ pretensions of the left-leaning libertarians and the longer wertfrei tradition of the Austrian School the LvMI bloc reached out to other marginal right-wing groups, such as states’ rights organizations, historical revisionists, and neo-Confederates.”
 
Murray Rothbard did not reject value-freedom in economics. To the contrary, he insisted on it, and a principal theme in his writings about policy is that economists should make clear their value-commitments. In this he has been followed by Joseph Salerno, whom Wasserman assails. A grosser misunderstanding on Rothbard could hardly be imagined.
 
As Dante long ago said, “non ragioniam di lor.” Let us look at this ill-thought out book and pass on.
 
David Gordon is Senior Fellow at the Mises Institute, and editor of The Mise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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