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1일 수요일

<지금 우리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아래 글은 <서구의학은 파산했다>에서 발췌해 가져온 것입니다.
 
<서구의학은 파산했다>는 위퍼블wepubl에서 개인 독립 출판,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을 정의해 한 시대의 주도적인 과학 이론의 기본 전제라고 정의했다.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은 환원론이었다. 하지만 지난 20세기부터 환원론적 전제에 모순되는 현상들이 물리학을 비롯, 생물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과학적 세계관은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 눈 앞에서 기계론적, 선형적,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방법과 세계관이 복잡계적, 비결정론적, 비선형적 세계관으로 대체되고 있다.
 
 
 
과거 서구 과학은 환원주의(환원론)와 분석적 방법으로 자연과학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20 세기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과거 서구의 인식 방법에 한계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19세기까지는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과학적 사고를 지배했지만, 20 세기로 넘어오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양자 역학의 탄생, 복잡계의 출현, 카오스 이론 등이 나타나면서, 고전 물리학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환원론(還元論, reductionism)은 고전 역학과 함께 19 세기까지 과학자들을 지배한 인식 방법이었다. 서구 의학도 말하자면 환원론으로 쌓아올린 집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환원론은 인식 대상을 최소의 구성 요소로 나누어 연구함으로써 전체를 이해하려는 연구 방법이다.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데, 이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런 방법이다. 그런데 환원론에서는 각 기본 요소가 독립적이며, 외부의 영향에 따라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또 기본 요소를 더하면 전체가 되고, 전체는 기본 요소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 기계를 보면 이런 믿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계는 각각의 부품을 더하면 전체가 되고, 전체는 부품으로 분해할 수가 있다. 또 환원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분리되어 있고, 우주 내의 사건과 시공(時空)이 역시 별개이다.
 
그런데 이인슈타인이 나타나면서 위와 같은 가정은 모두 틀리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가 우주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전체를 이루고 있다. 거대한 중력을 받으면 시공간(時空間)과 빛이 휘기도 하고, 속도가 빠르면 시간이 느리게 가기도 한다. 고전 역학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또 고전역학에서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가 실험해보니, 입자의 위치를 정하면 운동량을 정할 수 없고, 운동량을 측정하면 입자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것이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인데, 이로써 전체를 기본 요소로 분리해낼 수 있다는 환원론의 가정은 오류임이 드러났다. 전체를 부분으로 나눌 수 없으니까, 역으로 부분을 조립해 전체를 만들 수도 없다.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1975년 출판된 그의 책 <물리학의 도(The Tao of Physics: An Exploration of the Parallels between Modern Physics and Eastern Mysticism)>에서 환원론의 한계와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설명한 바 있다.)
 
고전역학에서는 부분의 움직임과 특성이 전체를 결정한다고 믿었지만, 양자 역학으로 넘어오면서 전체가 부분의 움직임을 결정한다고 믿게 된 것이다. 환원론에서는 인간의 몸을 세포로 심지어 DNA로 잘게 나누어 관찰하고, 세포나 DNA를 고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는데, 전체가 부분의 움직임을 결정한다는 양자 역학적 사고에 따르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몸의 위()나 간(), 폐나 신장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간이나 폐는 세포 단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의 행동이나 대기의 변화, 사람의 몸 따위는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그것들이 서로 밀접한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런 것들을 복잡계(複雜系)라고 불렀는데,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뉴욕에 태풍이 분다는 말은, 바로 복잡계의 하나인 카오스의 특징을 요약한 말이기도 하다. 환원론에서는 각 요소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했는데, 복잡계에서는 북경의 나비가 뉴욕에 바람을 몰고 올 정도로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간()에 병이 나면 눈에 문제가 생기고, 신장에 이상이 오면 귀가 어두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 의학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한다. 여기서도 환원론으로는 자연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요소가 독립적이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환원론의 전제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결국 복잡계의 하나인 우리 몸은 환원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환원론으로 만든 서구 의학이라는 집은 부실 공사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수학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학은 오래 전부터 그 자체로 모순이 없는 완전한 세계로 여겨져 왔다. 수학자 힐버트도 그런 자신감에서 출발해, 얼마의 공리(公理)만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수학의 모든 명제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힐버트의 생각의 밑바탕에는 환원주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러 수학자들과 함께 수학의 완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거창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수학자 괴델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구를 하던 괴델은 수학의 완전성이 아니라 불완전성을 증명하고 말았다. 즉 어떤 수학 체계이든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이것이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이다. 다시 말해 수학의 체계를 몇 개의 공리로 환원할 수 없다는 증명으로, 환원주의에 치명적인 선언이었던 셈이다.
 
지난 19세기 말, 20시기 초에 독일에서 시작된 게슈탈트 심리학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부분들을 조합해서 전체를 인식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먼저 인식하고 그에 따라 부분들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종이 위에 점을 몇 개 찍어 놓았는데, 거기에서 개의 형상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점들의 모임을 달마시안 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또 창시자 중의 한사람인 쿠르트 코프카(Kurt Koffka)전체는 부분의 합과는 다른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하는 학생들에게, 게슈탈트 심리학은 더하기(addition)의 원리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그 인용이 틀렸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사회와 인간의 경제 활동은 복잡한 현상이므로, 자연과학의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또 오랜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시장이라는 사회제도는 사회공학적 방법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했다. 이렇듯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복잡계의 발견은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했다.
 
프리고진은 1996년 출판된 <확실성의 종말(La Fin des certitudes)>에서 결정론이 더 이상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비가역성(非可逆性)과 불안정성(instability)으로 인해 결정론은 설득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결정론은 시간의 화살을 부정하는 생각으로, 시간의 화살이 없으면 이미 결정된 과거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이어줄 현재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화학교사인 크레메스티(Rami E. Cremesti)는 프리고진의 책 <확실성의 종말(The End of Certainty: Time, Chaos, and The New Laws of Nature)>를 서평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고전 과학은 질서와 안정을 강조했지만, 현재는 이와 반대로 모든 단계의 관찰에서 요동(fluctuations), 불안정, 다자 선택, 제한적인 예측이 나타나고 있다..... 화이트헤드와 베르그송, 포퍼 등이 생각했던 비결정론이 지금 물리학에 나타나고 있다. 바이퍼케이션(Bifurcations)이 다양화와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프리고진은 빅뱅에 대해, 그가 양자 진공(quantum vacuum)”이라 부르는 탄생 이전의 우주(preuniverse)에서 불가역성의 국면 전환(phase transition)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의(中醫)인 리즈종(李致重)은 중의형상지사(中醫形上之思 八) 역사적 오해(歷史的誤解,)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0세기 계통론의 창시자인 버탈란피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의 정체(整體)나 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부분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더구나 생명에 있어서는 개개의 과정 외에, 생명 계통이 진정한 평형태(平衡態)의 폐쇄 시스템에 처해 있는지, 또는 체내평형(體內平衡, homeostatic)의 개방 시스템에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대 소산구조(Dissipative Structure, 중국어로는 耗散구조)의 창시자인 벨기에의 프리고진은 그의 과학적 성취를 총결(總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 시대의 과학은 하나의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실체(實體)에서 관계’ ‘시간’ ‘정보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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