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4일 목요일

서울경제 헝가리발 '원전 내로남불' 논란에....靑 "文 그렇게 말 안해" 진땀 수습 헝가리 대통령 "원전 없는 탄소중립 불가 공동 의향" '탈원전' 모순 지적에...靑 "2050년까지 원전 유지" "우리 원전 기술 전세계가 평가...신규 건설만 안해" '국내 탈원전, 해외 원전 수출' 모순에 외국도 혼란 ---->저런 쪼다 짓을 하면서 해외로 돌아다니고 싶을까? ------------------------------------------------------------------------------------------ 코로나 백신이 DNA 손상 복구를 방해하고, 후천적 면역 세포의 생성을 저해한다. SARS–CoV–2 Spike Impairs DNA Damage Repair and Inhibits V(D)J Recombination In Vitro <바이러스> 저널에 발표된 내용이라고 한다. 오경석 의사의 페이스북에 자세한 내용 있음 --------------------------------------------------------------------------------------------- 한국언론 철저한 보도 통제 ㄷㄷㄷㄷㄷ 임청하 http://www.ilbe.com/view/11376018025복사하기17 2021-11-04 10:51:30 중국 우한 시민이 서울 강남 한복판 호텔에서 우한폐렴 증상으로 강남보건소로 실려갔는데 이런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한국언론 개쓰레기 새끼들 입 싹 다물고 보도 안하고 있었음 ㄷㄷㄷㄷㄷ ---------------------------------------------------------------------------------------------- <수앙치전따오커, 쌍기진의 검객> 1991년 제작된 영화라는데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한 소년이 용을 죽이고 공주는 얻는다는 옛 전설의 스토리와 다르지 않다. 즉 어릴때 부모들끼리 합의한 혼인에 의해 자신의 신부를 찾기 위해 한 소년이 쌍기진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것이다. 거기에서 어린 소년이 무법자인 一刀仙을 죽이고, 어린 신부와 함께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끝이난다. 주인공인 두 소년, 소녀의 연기도 좋다. 중국 영화의 저력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중국의 사막지대인 서북지역인데, 감독은 물이 부족한 저 지방에서 관객에게 볼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주인공 소녀의 목욕 씬도 넣었다. 소녀의 엉덩이에 점이 있다고 들은 소년이, 그걸 확인하기 위해 몰래 엿보다 들키는 장면인데, 재미있다.) 高分武侠电影《双旗镇刀客》 导演: 何平 本片荣获1991年中国电影金鸡奖最佳美术奖、1992年东京第三届夕张国际惊险与科幻电影节最佳影片大奖、1992年第五届《中时晚报》电影奖商业映演类年度大陆优秀电影奖、1993年柏林电影节国际影评奖。 https://youtu.be/P6vaNfFT8V0 ---------------------------------------------------------------------------------------- 존재감 미미한 TBS 교통방송이 단신으로 보도한 거 딱 1개뿐..... 공중파와 주요 언론에서 철저히 은폐해서 이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이 거의 대다수임... (정보 빠른 일게이들 제외) 조선의 경제력이 신라/고려보다 퇴보했던 이유 [리얼팩트] 이씨조선미화멈춰 http://www.ilbe.com/view/11376161007 간혹 조선시대는 신라/고려 때보다 쌀 생산량이 높아져서 경제력이 성장했고 어쨌고 하는 소리들이 자주 보인다. 과연 사실일까? 이것은 전근대 사회에서 농업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논리를 마치 절대불변의 교리로 받아들여 생긴 오류에 불과하다. 경제력의 척도는 농업 생산량 그 자체가 아니라, 증가한 농업 생산량을 가지고 얼마만큼 상업과 무역을 발달시키켰는가? 그로 인해 얼마만큼의 경제규모를 확장시켰는가?에 달려있다. 즉 생산량보다 중요한 게 국가의 정책적 문제라는 뜻이며, 그 엄청나게 증가한 농업 생산량이라는 것도 실상을 따지고 보면 이앙법이 전국에 보급된 조선 후기의 상황에 불과하다. *조선 후기 농업 발전으로 인한 상품경제 발달 운운 할 때에 서방 세계는 이미 산업혁명의 각을 재던 시기였으니.. 시대에 역행한 농업혁명이 과연 자랑할만한 일인지도 의문. 다시말해 조선의 경제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아보려면 과연 조선 정부가 어떤 정책을 기반에 두었으며 어느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인데, 안타깝게도 조선의 정책 방침은 경제발전 대신 기존질서 유지와 체제의 안정이라는 아젠다를 택했으니 그 이유를 크게 두가지만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세율이 이전 시대보다 압도적으로 낮았다. (응? 세금이 적으면 백성들한텐 좋은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 노비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우리(조선)는 노비가 반이라서 큰 마을이라 하더라도 군졸이 대단히 적다. 중국은 노비가 없어서 집집마다 우수한 군사가 나온다. 자잘한 시골마을이라도 순식간에 수만명의 군사를 모을 수 있다."『용재총화 제9권 中』 →조선 전기에 이미 노비가 절반에 가까운 나란데 쌀 생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한 앞서 말했 듯 쌀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조선 후기의 얘기다. 이를 근거로 조선의 경제구조를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음. ※ 스스로 성리학적 제후국을 자처(제후국에 맞게 재정규모는 물론 국방비까지 대폭 축소) → 세금을 적게 거둠(정부 형태상 많이 거둘 필요가 없음) → 세금도 골때리게 적은데 노비 수까지 폭증하니 나라에 돈이 없게 됨(노비들은 세금을 안냄) → 나라에 돈이 없으니 관리들 월급을 제대로 못 줌 → 관리들은 대신 백성들을 착취해서 재산(노비 등)을 불리고 부를 축적 → 아무리 부를 축적해도 귀족문화가 사라지니 소비가 위축 → 소비가 위축되니 당연히 생산도 위축(조선사회는 쌀 생산 외의 거의 모든 상공업 생산기술이 상실됐으며, 결국 양반들 배만 불려주는 경제 마비의 악순환을 반복) = 백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인간지옥 생지옥.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력을 판단함에 있어 상공업 생산기술은 전부 무시한 채 쌀 생산만으로 측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사실 농업기술이야 고려 때 역시 꾸준히 발전 중이었으며 다만 조선처럼 모든 스탯을 농업에 올인하지 않았을 뿐이다. 고려와 조선의 수출 무역은 압도적 차이가 있었다. 고려는 외국에 금제품/은제품/고려청자/고려화문석/고려나전/고려비단/고려종이/고려부채/고려먹/고려인삼 등 고려라는 브랜드 자체를 수출한 반면 조선은 쌀/소/인삼 등을 수출했을 뿐이다. 무역의 대상도 크게 축소됐다. 고려가 송, 거란, 여진, 일본, 마팔국(인도), 섬라곡국(태국), 교지국(베트남), 대식국(아랍) 등 세계와 교역했다면 조선의 무역은 명,여진,일본 등에 한정됐다. 이토록 상공업 생산 및 부가가치에서 넘사벽의 차이가 나버림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의 쌀 생산 증가를 들어 경제력이 성장했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생산-소비의 균형 및 무역-상업의 선순환이다. 조선의 농업혁명은 상업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쌀 생산량이 얼마간 증가했다 한들 위와 같은 생산-소비 불균형으로 내수경제가 마비됨과 동시에 해외 무역까지 막혀 있는 상황에서 그놈의 쌀 생산량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의아할 뿐이다. 더불어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경제적 부유함이 절정에 이르렀던 고려의 전성기와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내내 파탄지경에 머물렀던 조선 전기의 인구가 과연 증가하긴 했을까? 하는 물음 역시 던져봄직 하겠다.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高麗) 때에는 밥을 먹이는 중[僧]이 3만 명이었으니, 당시에[고려]는 나라가 부유(富裕)해서 그렇게 했던가? 지금이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12일 갑인 5번째기사』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中原)에 비하면 1도(道)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원의 1도는 극히 부성(富盛)하여 우리 나라의 물력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왜국 역시 우리 나라처럼 가난하지는 않다"『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첫번째 기사』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고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조선]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흠영, 조선후기 선비였던 유만주의 일기』 세줄 요약 1. 조선의 쌀 생산 증가는 양반들의 배만 불렸을 뿐 무역 및 내수시장이 마비된 조선 경제는 줄곧 파탄지경에 머물렀음. 2. 폭발적인 쌀 생산량 증가와 상품경제의 발달이란 자평 역시 조선 후기 상황에 불과하며 서양은 이때 산업혁명이 코앞. 3. 경제력은 쌀 생산량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잉여생산물 증대가 상업과 경제규모를 얼마나 확장시켰는지로 판단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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