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단체 등 특정 성향 단체들이 갈수록 방종이다. 전주 기전大가
교직원을 뽑기 위해 지원자들에게, 각자의 연구실적(논문 등)과 함께
이영훈 교수 강의('위안소의 여인들')를 청취한 소감을 제출토록 공고
한 것에 대해, 이들 단체들이 부당한 간섭과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27일, '전북여성인권센터' 등 60여개 단체들은 기전大 앞으로 몰려가
"기전大가 위안부 폄훼 동영상 소감문을 강요했다"며 기자회견했고,
28일에는, '6·15공동선언실천전북본부'라는 이름의 단체가 논평을 내
고 "기전대학이 27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내놓은 해명은 사건의 본
질을 흐리는 물타기"라는 주장을 했다. 기전大는 27일, "이영훈 교수
의견에 찬성하는 지원자만을 기전大가 채용할 것이라고 시민단체들은
예단하지만 오해다. 민감한 문제에 접근하는 학자적 분석력과 예민한
학생들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지도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것"이
라고 밝혔다.
위안부는 聖域도 아니고 偶像도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위안부'라는
것 자체가 聖域化되고 偶像化되는 상황이다. (조갑제닷컴, 펀드빌더 발췌)
----> 한국에서 소녀상은 김일성 동상과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고, 위안부는 성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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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軍艦島) 환상'
아래 글은 출처가 <미국의 소리>로 되어 있지만,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글을 상당히 많이 참고한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군함도(정식 명칭은 하시마=端島)는 1890년부터 석탄이 채굴되기 시작하여 1974년에 폐광된 탄광섬이다. 현재는 무인도 상태이나 유네스코 등록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군함도에서 나는 석탄은 질이 좋아 일본 제철소 등에 공급되는 등 일본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점이 인정되어 유네스코에 등록된 것이다.
일본에 대해 무슨 트집 잡을 만한 거리가 없나 살피고 있던 일부 한국인들에게는 호재가 생긴 셈이다. 한동안 언론들이 신바람 내더니 영화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영화 개봉 전부터 언론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호객(?)에 나선 덕에 개봉 이틀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떴다. 反日의 소재가 할머니들의 일본군 위안부에서 할아버지들의 일본 광부로 확장되어가고 있는 현상이다. 위안부 할머니와 광부 할아버지 이야기는 숙연해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인데 무엇이 이토록 신바람 나게 하는 것일까?
네이버 시사상식 사전에서 찾아보니 <특히 군함도는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당한 곳이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연합뉴스는 <'군함도' 생존자의 증언…'발가벗고 주먹밥 먹으며 노역'>이라고 보도했다. 지긋지긋한 악몽의 상징쯤으로 비친다. 그런데 이를 곱씹으며 즐기고 있는 듯하니 괴이한 일이다.
즐기든 통곡을 하든 간에 사실 관계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1940년 4월 5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당일 '부산에서 도항(渡航) 문제로 내·외지인 관계자 회의'가 열렸다. 즉 조선인의 일본 입국에 관한 회의였다. 회의 내용으로 <자유노동자의 도항은 제한하는 것이나 집단 노동자의 도항은 될 수 있는 대로 수속을 간이하게 하고… 조선 측으로서는 도항 제한을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 이상이나 내무성측에서 아직 양해되지 못하는 점이 있으므로…>라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조선인이 일본에 들어가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었고 조선 측에서 이를 철폐 내지는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상을 알 수 있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에서는 조선인의 일본 밀항 문제를 다뤘다. 이 사설에서는 당시 일본 밀항을 알선하는 브로커들이 극성을 부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입국이 어려우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중국인들이나 동남아인들이 한국으로 밀입국하거나 관광이나 연수 목적의 비자를 받아 입국했다가 종적을 감추는 사례를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이처럼 돈 따라 흘러간 것이지 길 가다 잡혀갔다는 설을 믿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1939년에 '조선인 내지(일본 본토) 이송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발표에 의하면 조선 노동자가 일본에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각 기업들의 자체 모집이 있었고, 조선총독부에 의뢰하여 현지인(조선인)을 중간에 내세워 사람을 모집하는 '관 알선'(官斡旋)이 있었다. '강제'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지어낸 얘기일 뿐이다. 강제가 있긴 있었다. 밀항자들을 검거하여 귀국시켰던 것이다. 이는 '강제 연행'이 아니라 '강제 귀국'이었다.
또한 징병(徵兵)은 1938년도에 발표한 '육군특별지원병' 제도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강제는 없었다. 반드시 지원과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일본군 입대가 가능했다. 당시 지원자 수와 최종 입소자 수를 살펴보면 1938년 첫 해에는 지원자 대비 입소율이 13%대였고, 이듬해부터 1943년까지 줄곳 5%대 이내였다. 바늘구멍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당시 동아일보의 한 보도에 의하면 경남 함안에서 지원자 300여 명에 9명(3%)이 합격되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자료에 의하면 1942년에는 1.6%(지원자 254,273명에 입소자 4,077명)였다. 100명이 지원하여 채 2명도 안 되는 최종합격율이다.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일본 본토의 젊은이들이 모두 징병으로 전쟁터에 나가자 탄광 노동자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징용'(徴用)이 시작되었다.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국민징용령'은 1939년에 실시되었으나 조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자존심 상하는 얘기지만 조선인은 노동의 질도 떨어지고 신뢰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다가 점점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고, `내선융화(內鮮融和)`라는 통치이념을 내세운 조선인들의 탄원과 총독부의 노력으로 1944년 9월부터는 한반도 거주 조선인들에게도 '국민징용령'을 적용하게 된다. 비로소 '조선인 내지 도항 제한 철폐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후 그나마 조선인에 대해 '강제'라 할 만한 '징용(徴用)'은 1945년 3월까지 불과 7개월뿐이었다. 연합군이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면서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관부연락선(関釜連絡船) 항로가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일본이 항복함으로 상황은 끝났다.
남는 의문이 또 하나 있다. 해방이 되었는대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왜 그 지긋지긋한 일본 땅을 떠나지 못했을까? 차별받고 억압받고 목숨까지 잃어야만 했던 그 '악몽'같은 곳에서 말이다. 교포라 불리는 그들은 차별받느니 뭐니 해도 한반도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 살았다. 고향에 돌아오기가 싫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이 우리가 지금 말하는 '생지옥'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후 서독에 간호부와 광부로 간 일이나 지금 동남아에서 오는 근로자들의 처지나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실상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해 온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에서 지금 일제 식민지 시대를 되돌아 보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환상의 나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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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규(lhg2****)2017.07.2908:58:07신고 | 삭제
블라인드 채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능력있는 사람을 뽑으라는 것이 아니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지 말고 뽑으라는 의미다.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반대하고 남들 일하고 공부할 때 놀고 데모나 하던 사람들은 찬성한다는 것이다. 내가 오너여도 그런 식으로는 직원 채용 안한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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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진(go****)2017.07.2909:54:46신고 | 삭제
이름만 그럴듯하지 실상은 관변에 득실거리는 서류맨들 밥 주자는 짓거리.
----> 문죄인의 사회적 기업 적극 추진 뉴스에 대한 조선일보의 댓글.
그의 말대로 사회적 기업이란 간판 달고, 국민 세금을 타먹는 인간들이 그 돈을 차지하기 위해 미쳐 날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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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보그의 엘 고어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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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의 글과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가치가 오르고 있다. 나 역시 하이에크가 지난 세기 최고의 천재 중의 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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