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6일 금요일

서구 사회의 쇠락의 원인
2012년 영국 출신의 사학자 닐 퍼거슨(Niall Ferguson)은 리스 강연(The Reith Lectures)을 통해 서구 사회의 쇠락의 원인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했다. (이 강연은 후에 <거대한 퇴보(The Great Degeneration)>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 세대간 사회 계약의 붕괴
2. 극도로 복잡한 규제
3. (law)에 의한 지배가 아닌 변호사(lawyer)의 지배
4. 시민 사회의 쇠퇴
그의 강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대간 사회 계약의 붕괴
버크(Edmund Burke) 프랑스 혁명 후에 집필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1790)에서 진정한 사회 계약은 왕과 국민 사이의 계약이 아닌, 세대 간의 계약이라고 말했다.
사회는 사실 계약이다. 국가는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계약만이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사람들 사이의 계약이다.”
 
하지만 현재 서구 사회는 잘못된 재정 운용과 과도한 복지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IMF 발표에 따르면, 그리스는 GDP153%, 이탈리아는 123%, 아일랜드는 113%, 포르투갈 112%, 미국 107%, 영국 88%, 일본 236%의 부채를 지고 있다. 이들 부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 이것은 세대간 계약의 위반이고 미래 세대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보스턴대 교수 코틀리코프(Laurence Kotlikoff)는 세대간 균형 수정헌법안(A Generational Balance Amendment)을 만들어,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 각 세대가 동일한 액수의 세금을 내고, 동일한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경제의 장기적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틀리코프 교수에 따르면, 미래 세대가 현재와 같은 수준의 세금을 내고 현재와 같은 복지를 누리려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 2013년부터 즉각적이고 영속적인 모든 연방 정부의 조세의 64% 인상
둘째, 즉각적이고 영속적인 모든 정부 지출의 35% 삭감.
 
그의 주장을 쉽게 풀이하면 현재의 세금을 대폭 올리고, 지금 국민들이 받아먹고 있는 사회보장,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푸드 스탬프, 실업급여, 각종 보조금 등을 모두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그걸 원할 리가 없다. 그래서 미국은 현재 미래의 파산을 뻔히 알면서도 정치가와 국민 누구도 그걸 직시하지 못하고 고장 난 기관차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극도로 복잡한 규제
사람들은 규제 철폐로 인해 미국이 2007년의 금융 위기를 맞았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너무 많은 규제와 잘못된 규제가 불러온 재난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은 1970년대에 수많은 규제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주요 은행은 위기에 처하고, 주식 시장은 폭락하고, 부동산 거품은 꺼지고, 인플레는 두 자리 숫자였다. 이는 1820년 이후 최악의 금융 재난이었는데, 마침내 1976IMF의 구제 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규제와 감독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누군가 또 다시 감독관을 감독해야 한다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더구나 규제를 실시하면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복잡계인 인간 사회는 비선형적으로 움직이고, 북경의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서 폭풍으로 변하듯이, 작은 충격이 언제든지 커다란 재난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가 너무 복잡하고 많아서, 우리 사회가 오히려 반대로 재난에 취약해져 버렸다.
코틀리코프(Larry Kotlikoff)와 케이(John Kay)는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내로우 금융(narrow banking, 지급결제전담은행, 예금을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도록 한 은행)을 주장한다.
 
퍼거슨은 규제를 단순하게 하고, 위반에 대한 처벌은 강력하게 하는 방식으로 복잡계인 금융계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9세기 영국의 경제 평론가였던 배젓(Walter Bagehot)의 주장을 따라, 중앙은행의 감독을 강화하고, 풍부한 경험을 지닌 관료들에게 재량권을 폭 넓게 주며, 금융의 역사를 숙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의 지배가 아닌 변호사의 지배
노벨상 수상자인 노스(Douglass North) 교수에 따르면, 사회가 효율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계약 감독 방법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경우, 그것은 과거 역사에서는 정체를 만들고, 당대에는 저성장을 유발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계약 기간이 길거나 계약 당사자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조건에서 거래에 참가할 경우, 사기업의 경영자들은 계약이 이행될지에 대한 불안으로 망설이게 된다. 채무자들이 언제 계약을 깨뜨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인데, 이때 제 3자가 계약이 이행되는지 감시한다면 채권자들의 불안은 어느 정도 감소될 수 있다.
 
과거에는 사적인 계약 감독 기관도 있었지만, 그것은 진입 장벽을 높이고, 독점권을 행사하며, 경쟁을 거부하고 경제적 효율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가 계약의 이행을 감시하는 구속력을 갖게 되었는데, 요점은 그런 권력이 사유재산권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에서는 인권이 아니라 사유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법의 지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나 독일의 법보다도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이 사유재산을 지키고, 투자자나 채권자를 더 잘 보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는 1789년의 혁명 이후 판사들을 불신했고, 그래서 입법부나 황제에 의해 법이 정의되고 만들어졌다. 그 결과 사유재산을 지키는데 소홀한 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중국 같은 경우, 지방 관리가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모두 휘둘렀다.
영국의 보통법이 사유재산을 더 잘 보호하게 된 것은 재판관들의 판례를 중심으로 서서히 시대의 변화에 맞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법의 지배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첫째로 국가 안보로 인해 시민의 자유가 구속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유럽의 좌파적 개념인 인권이 영국 법체계 속에 도입되고, 또 법 규정이 너무나 복잡하고 방대해지며, 법적 절차에 드는 비용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규제에 부합하기 위해 미국의 중소기업들은 연간 약 17천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한다. 거기에 불법행위 법률(tort law)로 인해 2003년 미국 GDP2.2 퍼센트가 비용으로 지출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경쟁력에서 미국은 조사국 15 개국 중에 15위를 차지하는 성적을 보였고, 청렴도에서는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낮은 21 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제도들이 타성에 젖고 조직이 관료화 하면서, 이제 미국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변호사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의 규제가 얼마나 심하지 알려주는 간단한 자료가 있다. 그것은 미국의 연방세법이 시대별로 얼마나 증가해 왔는지 보여주는 자료이다.
1913---400 페이지
1939---504 페이지
1945---8,200 페이지
1954---14,000 페이지
1969---16,500 페이지
1974---19,500 페이지
1984---26,300 페이지
1995---40,500 페이지
2004---60,044 페이지
2007---67,204 페이지
2010---71,684 페이지
2011---72, 536 페이지
2012---73,608 페이지
2013---73,954 페이지
 
이렇게 복잡하고 방대한 세법을 파악하려면 변호사를 불러 상의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그래서 변호사 비용이 많이 들고, 법이 아닌 변호사의 지배가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국세청(IRS) 우두머리조차도 소득세 신고가 너무 어려워 전문가에게 그것을 맡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일찍이 레이건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규제를 31% 폐지해서, 미국의 GDP30%나 끌어올렸다.
*시민사회의 쇠퇴
한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시민 사회 단체가 미국과 영국에 많이 있었다. 자발적 단체인 이들은 독서회부터 시작해 각종 봉사단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까지 너무나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민단체가 거의 사라지고 활동이 위축되었으며, 인터넷 상의 조직은 그야 말로 가상현실에만 존재하고 있다.
 
1831년 미국을 방문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제(Democracy in America)>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만큼 다방면에 결사의 원칙이 성공적으로 이용되고 활용되는 곳은 없다.....미국 시민들은 어려서부터 삶의 유혹과 고난을 극복하는데 스스로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고 배운다.
모든 연령과 모든 조건, 갖가지 생각을 가진 미국인들이 항상 단체를 결성한다. 그들은 상업적, 산업적 단체만을 결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이고, 심각하거나 하찮고, 일반적이거나 무척 특이하고, 또 거대하거나 극히 소규모인 수 천 가지의 다양한 단체를 결성한다..... 진실을 밝히거나 대단히 모범적 인물의 지지에 의해 하나의 생각을 형성해가는 일이라면, 그들은 단체를 만든다.“
 
프랑스인이었던 토크빌에게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는 그런 단체가 드물었고 대부분 정부에 문제 해결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콜 중독과 과도한 음주가 사회 문제가 되는 경우 미국인은 절주 협회(Temperance Society)를 만들어 그에 대처하지만, 프랑스인은 개인적으로 정부에 찾아가 술집을 단속해 달라고 주문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혼자 볼링하기(Bowling Alone)>의 저자 퍼트남(Robert Putnam)에 따르면, 미국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 대 초에, 그리고 1990년 대 말에, 이러한 시민 사회 단체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참여율이 1960년에는 60.2%였다가, 1996년에는 48.9%로 떨어졌다. 교회 참여율은 1950년대에 비해 20 ~ 50%, 각종 공공 집회의 참여율은 1973년에서 1994년 사이에 40%가 떨어졌다. 32개 전국적 협회의 회원이 약 50%, 사친회(師親會)의 회원이 61% 각각 감소했다. 문제는 이것이 퍼트남의 생각대로 TV나 인터넷만의 영향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이미 오래전 부모와 같은 권위를 지닌 국가가 시민들을 영원한 어린아이로 만들어 놓고, 그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미래를 예견했다. 요람부터 무덤까지라는 매력적인 유혹으로 시민들을 꾀어서, 시민 사회의 자발적인 단체를 해체시킨 국가가, 오늘날 우리의 가장 큰 적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미래에 큰 위협인데, 그 이유는 토크빌이 지적했듯이, 인간의 감정과 정신은 인간 상호간의 교류를 통해서만 확장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립학교의 중요성은 다시 한번 강조할 만하다. 국가가 독점적으로 교육을 공급하면 모든 독점이 그러하듯이 경쟁의 결여와 기득권 집단의 횡포로 인해, 교육의 질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가의 독점이 사라지기만 하면, 교육은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교육 개혁을 통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학교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또 바우처(voucher) 시스템(사립학교에 지원한 학생을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도 도입되었다. 미국에서도 바우처 시스템이 적용되는 차터학교(charter school)2천 개 이상 생겨났다.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교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가르치기 때문에 이들 학교의 학생들은 높은 수학 능력(修學能力)을 나타내고 있다.
스웨덴, 브라질, 인도,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정부의 독점적이고 무능한 교육에 대항해 사립학교들이 설립되고 있으며, 지역 주민의 희망이 되고 있다.
 
자발적 단체는 우리가 행동의 규범을 배우는 곳이기도 해서, 이런 단체 활동을 통해 우리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범죄를 퇴치하는 등 자치를 배우게 된다. 개인이 주도권을 갖고 행동하고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주의(liberalism, 또는 미국 영어로 classic liberalism)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구의 쇠퇴를 경고한 퍼거슨의 글에서, 역으로 다음과 같은 번영과 성장의 요인을 찾아낼 수도 있다.
 
첫째. 재정의 건전한 운용. 서구 사회의 쇠퇴는 무엇보다 심각한 재정 적자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적자 없는 재정의 운용은 번영의 기본이다.
 
둘째. 시민들에게 하이에크가 말한 개인의 자유를 확대함. 규제를 철폐하면 개인의 자유는 자연히 확장된다. 그러면 정치적 자유와는 다른, 개인의 자유를 되찾은 시민들은 놀라운 일들을 해낸다. 간단한 예로 셰일가스를 개발하는 방법인 프래킹(fracking)을 들 수 있다. 프래킹은 환경오염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공정인데, 만일 관료들이 프래킹을 규제해서 금지했다면, 오늘날 셰일가스 혁명이라 불리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을까?
 
셋째. 사유재산의 보호. 존 로크는 인간이 생명과 자유와 사유재산이라는 천부인권을 갖고 태어났다고 말한 바 있다. 공산체제가 보여주었듯이 사유재산을 잃으면, 생명과 자유도 보존할 수가 없다. 그 대신 사유재산이 철저히 보호되면 그 사회는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도덕적으로도 건강해진다.
 
조선이 망한 이유 중 하나는, 행정, 사법의 권한을 모두 쥔 지방 관리들이 백성의 사유재산을 함부로 침해해서, 조선에 상업이 발달하고 자본이 축적될 여지를 없애버렸다는 데 있다. 춘향전의 변 사또가 보여주듯이, 지방관들이 아무 구실이나 붙여 돈 있는 사람들을 잡아다 볼기를 때리고 재물을 착취했으므로, 사유재산이 형성될 수가 없었다
 
넷째. 작은 정부를 만들어 정치를 축소하고, 시민사회와 시장의 기능을 확대함. 거대 정부는 의존적이고 게으르며 피동적인 인간을 만들어냈고, 그 비용은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작은 정부 또는 최소 정부를 만들어 정치를 줄이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서고, 관료가 아닌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은 공교육을 축소하고, 교육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소비자인 부모와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가도록 해야 한다.
 
퍼거슨의 글을 자세히 읽다보면 서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국가 권력이다. 국가 권력에 의해 규제가 늘어났고, 개인의 자유가 억제되었으며, 시민 사회가 위축되었고, 사유재산이 위협받았다.
전제적 왕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산업혁명으로 생산의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세계는 차차 문호를 개방하고 교역을 했고 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고 국가의 권력은 귀족과 시민들에 의해 견제되고 있었다. 그래서 러셀은 <산업문명의 전망(The Prospects of Industrial Civilization)>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산업화는 자체 내에 대규모 조직을 방해하는 성향이 없으므로, 단독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점차 전 세계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하나의 단위로 조직할 것이다. 그 경우 산업은 전력(電力)이나 원료에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가동될 것이고, 각국은 자국에 최선의 작물만을 기르고 생산할 것이다. 또 각 개인의 삶은 자신의 사회만이 아니라 외국에까지 의존하게 된다. 각국은 생존에 필요한 상품을 단지 일부만 생산하고, 나머지는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얻게 된다. 이것이 초기 산업 경영자들(industrialist)--콥덴(역주: 리처드 콥덴, 1804 ~ 65, 영국의 제조업자, 경제학자, 정치가)과 맨체스터 학파(역주: 19 세기 전반에 자유무역을 주장한 영국 학파. 콥덴과 존 브라이트가 주도했다.)--의 이상이었는데, 그들 모두는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였고, 산업화가 세계 평화의 시대를 초래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로 서구에서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가 축소되고, 국가의 권력이 차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적 몽상가 생시몽에서 시작해 콩트의 실증주의와 헤겔의 역사철학,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거쳐 마르크스에서 악의 꽃을 피운 사회주의가 몰고 온 변화였다. 자연과학의 놀라운 성과에 자극을 받은 생시몽과 마르크스 등은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국가와 시장을 관리하면 유토피아가 온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주된 감정은 자본가에 대한 증오와 질투였고, 이상을 실현할 아무런 구체적 방법도 없었지만, 환상은 매력적이고 달콤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환상을 좇아 사회주의적 목적을 위해 뛰었다. 제일 먼저 러시아에서 레닌과 스탈린 등은 자신들이 추구했던 이상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자본을 독점하고 수 백, 수천 만의 노동자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했다. 자본가들은 가차 없이 학살하고 구금하고 고문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생산이 이뤄지면 정말로 모든 인민들이 풍요의 바다에 빠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차차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시장을 금지하면 무서운 보복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0여 년 후에 사회주의는 파산으로 막을 내리고 그 이념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적 공학은 이미 소위 말하는 자본주의사회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대공황을 타개했다고 전해지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미 1944년에 국가의 권한의 대폭 확장한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4111일 연두교서에서 제2의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정부의 권한을 넓혀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국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공장, 점포, 농장 등에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직업을 가질 권리
*입고, 먹고, 여가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적절한 돈을 벌 권리
*자신과 가족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농작물을 키우고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는 권리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모든 기업이, 독점기업으로부터의 부당한 경쟁과 병합이라는 위협 없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는 권리
*모두 가족이 인간다운 집을 소유할 권리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고, 건강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권리
*노년, 질병, 사고, 실업 등에서 비롯된 경제적 두려움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을 권리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
 
그런데 위의 권리들은 사실은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 개인이 노력해서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래서 가족을 만들고, 비 오는 날을 대비해 저축을 하고, 목돈을 모아 집을 사고, 섭생에 주의해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그전까지의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루스벨트의 제2의 권리장전이 나온 이후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들을, 정부에게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라는 것은 사실은 큰크리트 빌딩일 뿐이다.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민들의 혈세를 걷어서 먹고사는 불한당(不汗黨)들이다. 결국 정부는 시민들의 혈세를 걷어서, 게으르고, 거짓말에 능하고, 남 탓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금전적, 물질적 원조를 하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미국인들의 권리는 사유재산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였다. 이들 권리는 남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유과 재산과 행복을 침범하지 말라는 부정적 권리였다. 시민들은 이웃이나 정부로부터, 그들의 자유와 재산과 행복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지녔고, 법이 이것을 보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루스벨트가 이런 권리의 범위를 넓히고, 그것을 긍정적 권리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일반 시민들은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즉 타인들에게 그들의 교육과 고용과 건강, 주택 등을 위해 강제로 돈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시민들은 정부로부터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강탈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미국의 복지 사회의 출발이었다. (즉 좌파들이 말하는 권리란 가짜 권리이다. 참다운 권리는 남에게 물질적인 무엇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남에게 나의 정당한 자유를 간섭하지 말라는 당연한 요구이다. 예를 들어, 사유재산의 권리는 시민들이 자신의 사유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일할 자유가 있으며, 그렇게 해서 획득한 재산은 남이 부당하게 침범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좌파들이 말하는 인권도 진정한 인권이 아니라, 그들이 투쟁 목표로 삼는 대상이 되면 인권이 된다. 즉 좌파들이 학생들에게 두발과 교내 결사를 인권으로 내세우면, 그것은 학생들을 좌파 선동의 도구로 쓰기 위해, 인권을 구실로 투쟁하겠다는 뜻이다. 좌파 정부 내내 인권위는 머나먼 외국인의 인권까지 들먹였지만, 정작 북한 인권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국의 인권위는 그런 의미에서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요약하면 현대 서구사회는 좌파의 사회공학적 이념으로 인해 순수한 자유주의적 원칙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국가의 권력은 커지고 개인의 자유는 축소되는 상황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것이 서구 사회가 쇠퇴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포함해 서구사회의 쇠퇴의 원인으로 다음 4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복지 프로그램의 확대로 재정 적자가 심화되고, 복지에 기생해 먹고 사는 국민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기업가들은 각종 규제에 묶여 점점 기업가 정신을 잃고 있다.
 
둘째, 관료들이 문제의 해결사들이 아닌 장애물이 되었고, 시민들과 기업가들을 각종 규제로 옥죄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 500년의 관료주의 전통이 있었던 우리 환경에서, 이들 관료들은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집단이 되었다.
 
셋째, 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정치는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이 장악하게 되었고, 이들이 무분별하게 금전과 혜택을 뿌려대면서, 나라가 혼돈의 나락으로 빠지고 있다.
 
넷째, 케인즈 경제 정책에 따라 정치인들이 경제를 농단하고 있고, 인위적인 정부 개입으로 인해 경제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그런데 복지 프로그램은 대부분 경제적 평등이라는 좌파적 이상에 따른 것이고, 케인즈 경제학 역시 중앙의 정부가 국가의 금융을 통제할 수 있다는 허황된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또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이 진리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면서 점점 인민민주주의를 닮아가고 있고, 이런 민주주의 안의 집합주의적 요소가 민주주의를 혼란과 파탄으로 이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위의 4가지를 다시 좌파 복지 관료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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