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1일 목요일

내가 말하는 복잡계 혁명이란 무엇인가?
 
 
르네상스 이후로 나타난 철학자들은 과거의 전통을 배격하고, 새로운 학문의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회의하고,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사색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베이컨은 실험과 귀납법에 의한 자연 탐구 방법을 제시했다. 이런 바탕 위에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는데, 뉴턴의 천체이론은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성취였다. 뉴턴의 우주관은 환원론적이고 선형적이며 결정론적이었는데, 이런 패러다임은 20세기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는 과학계의 기본적인 인식이 되었다.
 
더구나 자연과학이 크게 성공해서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자, 인문사회과학 쪽에서도 자연과학적 방법을 모방해 학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연과학의 대상은 인식이나 의도나 욕망이 없는 물질인 반면, 인문 사회과학의 대상인 사람은 의도와 욕망을 갖춘 존재였다. 따라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훗날 미제스와 하이에크는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흉내 내는 것을 과학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로 뉴턴의 우주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장 비근한 예가 날씨이다. 즉 기상 예보에서 초기에 아주 미세한 변수의 차이, 예를 들어 0.0000001 정도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을 카오스라고 불렀는데, 카오스에서는 기존의 선형적인(linear)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예측할 수가 없었다. 날씨는 인간이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예측할 수 없는 범주에 든 것이다.
 
그런데 날씨만이 아니라 인간의 경제나 사회도 똑같이 예측할 수가 없다. 변수가 너무 많은 탓이었다. 하이에크는 이런 현상을 복잡 현상(오늘날의 복잡계)이라고 불렀고, 여기에서는 단지 패턴 예측 밖에는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경제학, 생물학, 의학 등은 모두 자연과학의 패러다임에 따라 만들어졌고, 환원론과 선형적인 인식, 결정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제 이런 패러다임이 틀리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앞으로의 세계는 복잡계, 비선형적인 인식으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올 것이고, 그것이 바로 복잡계 혁명이기도 하다.
 
 
문제는 현대의 복지, 관료 사회는 이런 사회와 경제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세워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계는 관료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조치를 취하면, 반드시 그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고 그로 인해 사태는 더욱 악화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가정 좋은 방법은 관료가 개입 하지 않고, 각자의 문제를 각자가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심 탈레브는 그렇게 해야 시스템이 더욱 앤티프래질(anti-fragile, 유연하고 견고)해 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대의 정치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대의민주주의이고, 경제는 관료가 일국의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엉터리 주류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복잡계 혁명이 일어난다면 정치에서는 대의민주주의 대신 모든 시민이 참여 가능한 로또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고, 경제에서는 국가의 통제를 제거한 자유방임주의 경제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음과 결과가 일어난다.
 
 
1. 작은 정부, 최소 정부가 성립된다. 공무원 대부분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국가는 국방, 외교, 치안 등에만 책임을 지고, 그것 역시 민간과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2. 모든 규제가 철폐되고, 시민들은 누구나 자유로이 교환, 교역할 수 있다. 입법가들은 보편적인 규범만을 법으로 제정한다.
 
3. 세금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경제가 살아난다.
 
4. 관료들이 시민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던 관료사회적 조직에서, 가족, 지역 공동체, 교회, 직장, 각종 단체 등의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등장한다.
 
또 생물학, 의학에서의 복잡계 혁명이 일어나면 현대의 서구의학은 퇴출되고, 그 대신 중국의 한의학이나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 그리고 각국의 토종 의학이 그것을 대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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