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을 먹여 살린 건 자본가들이었다
근로기준법은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탄압한다는 잘못된 편견에서 시작되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노동 조건이 열악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노동자들이 영국의 시골에 있었다면 그들은 더 심한 노동을 해야 했거나 기아로 죽었을 것이다. 자본가들의 공장은 그들에게 임금을 제공하고 값싼 물건을 생산해서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하이에크는 역사가 좌파들에 의해 왜곡되어, 자본주의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관심 있는 분은 <Capitalism and the Historians>라는 책의 “History and Politics,”라는 글 참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읽을 수 있음)
전태일은 흔히 노동 운동의 영웅처럼 받들어지지만, 그가 공장에 취직하기 전, 그가 농촌에서 살 때, 그의 생활은 더 고달팠다. 그는 힘든 농촌 일을 해야 했고, 일을 해도 먹을 게 없었다. 그가 서울로 올라온 이유가 그 때문이다.
공장의 노동 조건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는 적어도 농촌에서 있을 때보다는 잘 먹었다. 그건 바로 자본가들이 수익을 창출해 그에게 나누어준 덕택이었다. 만일 자본가가 근로기준법에 있는 모든 사항을 지킨다면, 그의 공장은 수익 나지 않고, 수익이 나지 않는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면 전태일은 다시 배고픈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에서 그는 하루 12 시간 15시간을 일해야 하고, 그렇게 일해도 배를 곯아야 했다. 그것이 당시 농촌의 현실이었다.
전태일의 주장대로 근로기준법을 지켰다면, 공장들은 문을 닫고, 상경한 농촌의 처녀총각들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고, 한국의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은 이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되어야 했다. 이것이 전태일의 공로다.
그러니까 근로기준법이 지켜졌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태어날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중국을 보라.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노동자들은 우리의 60, 70년 대처럼 힘든 노동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런 덕택에 오늘날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중국이 근로기준법대로 했으면, 중국은 처음부터 산업화를 시작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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