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3일 수요일

자본주의의 맹아는 '자유'이다
 
평론가 조우석은 작년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즈음해, 국사학계의 친북 정서의 뿌리가 김용섭에게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숨은 신은 전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경제사학자 김용섭(1931년 생)을 지칭한다. 해방 이후 한국의 지식사회는 일제가 심어줬던 식민사관(한반도 정체성 이론)의 족쇄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걸 풀어낸 영웅적 해결사가 김용섭이었다. 김용섭은 기념비적 저술 <조선후기농업사연구>(1970)에서 조선후기에 자생적 근대화의 싹을 규명했다. 그걸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이라고 하는데, 일제가 심어준 식민사관의 독을 없애줄 위대한 해독제로 즉각 각광을 받았다
 
그렇다면 왜 김용섭은 기를 쓰고 조선 시대에 자본주의가 나타났다고 증명하려 했던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하면 유추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나무위키>에는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현실사회주의권 국가에서 대두되었다. 소련이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소위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인류 역사가 '세계사적 발전법칙'인 고대-중세-근대의 발전과정을 거쳐왔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지역에서 세계사적 발전법칙이 적용되어 왔음을 검증하려 하였다. 이에 따르면, 사회는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현대(?) 공산주의 사회 순서로 발전한다. 이를 역사발전 5단계설이라고 한다. , 이들의 이론 상으로는 자본주의가 먼저 나타나야 공산주의가 그 다음으로 나타날 수 있다. [2].....
이 때 중국에서 마오쩌둥은 서구적 발전법칙이 중국에서 역시 발견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자극을 받은 중국학계에서는 1920 ~ 30년대에 중국 자본주의 맹아론을 펼치게 된다. 한국의 자본주의 맹아론은 바로 이 중국의 자본주의 맹아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탄생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공산주의가 나타나려면 먼저 자본주의가 나타나야 하는데, 마침 중국에서 모택동이 공산주의 역사 발전의 법칙에 따라 동양 사회에서도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그 바톤을 이어받아 한국 역사학계에서도 혈안이 되어 자본주의 맹아를 찾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 맹아를 맨 처음 찾은 사람이 김용섭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법칙을 찾을 수 있다거나, 역사에 목적이 있다는 등의 역사주의(historicism)는 이미 칼 포퍼가 <역사주의의 빈곤(Poverty of historicism)>에서 엉터리라는 것을 잘 증명해 놓은 바가 있다.
 
그러니까 김용섭은 엉터리 역사주의 사관에 기초해 자신의 사상누각을 쌓아 올렸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사회가 지나야만 나타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란 말이다. 자본주의는 왕 또는 지배자의 권력이 제한되거나 축소되고, 개인들의 자유가 신장되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자유롭게 상품과 지식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미제스와 하이에크가 말하는 카탈락시(catallaxy)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고대에 지배자의 권력이 약했을 당시, 자본주의가 나타났을 수도 있었다. 인도의 고대 유적지에 하수도 시설까지 갖춘 화려한 문명은 아마 그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도, 당시 마그나 카르타의 탄생과 명예혁명 등으로 귀족들에 의해 왕의 권력이 제한되고, 개인들의 자유가 확장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 나아가 경제 자체가 위기를 맞은 것도, 그 무엇보다 자유 부족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좌파들이 광화문에서 난동을 부리는 한국에서 무슨 자유가 부족하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자유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현재 개인 또는 시민들은 각종 규제와 법률에 얽매어 자유를 제한 당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최저 임금이 있다. 임금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자유롭게 합의만 되면 되는데, 정부에서 최저 임금을 정해 놓고 사용자에게 일정 액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웬만한 자영업자는 최저 임금이 무서워 알바를 고용하지 못하고 자신이 몸으로 다 때우고 있다. 자연히 청년 실업률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또 대형마트를 한 달에 두 번씩 쉬게 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한 것인데, 얼마 전 대법원에서는 이를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법이 무언지 모르는 한심한 법관들이다.
 
정치적 자유는 보장되어서 좌파들은 시내 한복판에서 깽판을 칠 수 있지만, 개인들의 자유는 억압되어 개인들은 마음대로 상품과 지식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칼탈락시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관료들을 다그쳐 경제를 살리려 해도, 개인의 자유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그래서 옛날의 명언이 더욱 떠오른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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